폭우. : 텀블러 하나와 생각들.



이틀째 무지무지하게 비가 내리는 중이다. 집이 높은 층에 있어 빗방울 부딪치는 소리를 못 듣는다 아쉬워하던 나는, 새벽 3시가 넘어 폭포 수준으로 유리창을 때리며 흐르는 물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아침을 열고 앉아 있는 내내 허벅지와 바지 사이에 눅눅한 습지 한 장을 끼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을 맞는 얼굴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진득하니 얹혀서 세안을 종용했다.

이틀의 폭우 정도야 사실, 오랜만이라 기껍다. 그리웠던 소리를 실컷 들어서 만족스럽다. 온갖 ASMR이 정교한 화음을 낸다 해도 실제 소리보다는 부족하다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저녁엔 일부러 창을 향해 책상을 돌려 놓았다. 스탠드 불빛이 반사된 유리 쪼가리에서는 물방울들이 아래로 아래로 기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놀라서 깬 새벽에도 바로 눈을 감지 않고 가로등을 녹이는 물줄기를 감상했다. 개울 흐르는 듯한 풍성한 소리가 귀 밑에서 들려왔다. 번쩍거리는 빛은 무서운 거라고 배웠지만 그럼에도 계속 머물기를 바랐다. 이 폭우도 함께 끌고 가버릴까봐.

애인과 헤어졌다. 여러 사정이 얽히고설킨 결과였지만 아, 이 연애에는 끝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막연하지만 조금 오래 해왔기 때문인지 지지부진하게 끄는 일 없이 조용하게 매듭을 지었다. 폭우는 그럴싸한 핑계가 되어줬다. 얌전히 좋아하다 보면 그치고 지나갈 날씨를 실없이 이 말 저 말에 가져다 붙인다. 허벅지에 붙어 있던 습지는 기어올라 겨드랑이 틈으로 파고들었다. 마음이 눅눅하다고 불이 붙지 않는다고 어렵게 태워 본다. 그 이상은 곱씹어 말해 무엇하리. 







photo source: http://fotalge.tumblr.com/post/171181786202/lazulando-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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