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얼. : 텀블러 하나와 생각들.


문득 시리얼을 좋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만들어 먹기 귀찮을 때, 한 끼 식사를 하기엔 배가 덜 고프거나 그 뒤의 더부룩함이 걱정될 때 이 세상에 시리얼이 있어 다행이구나 한다. 시리얼은 맛있고 가볍고 든든하다. 또한 몸에 열이 많아 웬만하면 한겨울에도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내게 이상적인 온도의 음식이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우유를, 시리얼이 원래 높이보다 살짝 올라갈 정도로만 채우며 입맛을 다신다. 우유를 다시 냉장고에 넣어 문을 닫음과 거의 동시에 반대쪽 팔을 뻗어 차갑게 빛나는 숟가락을 집어든다. 그것을 투명한 유리컵 가장자리로 쑤욱 담가 달그락거리면서 시리얼의 위층에 우유를 살살 적셔준다. 그리고 한 입 덥석 머금으면, 까끌까끌한 과자 사이로 겨우 들어찼던 우유가 그 다음 숟갈이 간절할 정도로 찔끔 흘러나온다. 곧 가열하게 컵을 비우기 시작한다. 과자가 눅눅해지는 속도와의 싸움이지만 입 안에 서늘한 온도를 꼼꼼하게 끼얹는 일이 즐겁다.

이 기분 좋은 온도를 담당하는 우유를 애가 탈 정도로만 붓는 건 눅눅해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과자를 다 건져낸 후 2차 코스로 우유 한 그릇을 쭉 들이켜야 하는 일이 부담스러워서다. 혓바닥에 시원 촉촉한 과자향이 은은하게 남아야 시리얼 한 그릇 했다는 여운에 뿌듯하지, 폭포수 같은 우유 사발로 휩쓸어 넘기는 일은 힘이 들기만 한다.









photo source: http://coffee-is-better-than-a-hug.tumblr.com/post/161673656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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