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3 23:15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 빠져드는 일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이 책을 읽었고, 절판되기 전까지는 주변에 추천해 볼까 하는데 다행히 올해도 소개할 수 있었다. 사실 오래된 책은 추천하기가 점점 조심스럽다. 가치관이라든지, 시류에 뒤떨어진 부분이 읽을수록 눈에 띄니 말이다. 현명한 지인들이 그것을 감안해 주기를 바라며, 그럼에도 이 책을 매년 읽는 이유는 일단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미국인들의 풍경이 즐거워서다. 카드를 수십 통 쓰고 수십 통 받지만 누가 올해에는 보내지 않았는지 기억하지 못해 기분이 좋지 못하고, 옆집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보이는 나무마다 줄전구를 끼얹고, 조금 더 훌륭한 크리스마스 음식을 생각해내려 애쓰고,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모금을 위해 소방관이 케이크를 들고 방문하고 경찰관은 달력을 찍어 가식적인 미소를 지은 채 판매한다. 크리스마스가 그저, 연말을 기념할 겸 놀기 흡족한 날로 인식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 루터라는 세무사가 있다. 이 사람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모두 은근히 한심하고, 웃기고, 불쌍하다. 냉소적인 인물이다. 보이는 누군가를 좋게 묘사한 적이 없는 듯해 존경하는 인물이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지 의심스럽다. 아무튼 루터는 크리스마스를 위해 쓰는 소비를 대부분 낭비로 여기고, 작년 크리스마스 비용을 계산한 뒤 기겁하고서 올해는 이 피곤하기만 하고 쓸데없는 짓거리들을 모조리 건너뛰기로 결심한다. 대신 그 돈으로 아내와 크루즈 여행을 계획하지만 크리스마스로 인한 분주함이 너무나 당연한 이웃들에게는 굉장히 이기적인 괴짜로 전락하고, 모두와 갈등을 빚는다.

이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겠지만, 그동안 접한 크리스마스를 다룬 책과 영화 중에서는 가장 현실과 가까운 것 같고 가장 이야기가 세밀하다. 그리고 루터라는 사람의 행보와 이야기의 끝이 주는 여운이 좋다. 법정 소설의 대가인 존 그리샴이 재미있게 잘 쓴 비법정 소설이라는 점부터 흥미로운데, 그가 그려낸 루터가 변호사 출신으로서 튀어나온 어떤 본능인지, 일부러 내놓아 독자에게 은근한 손가락질을 받게 만드는 계산된 존재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인물도, 끝에 가서는 결국 자기가 필요로 하는 이들이 그동안 하찮게 여겼던 이들임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교훈적인 책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어렵게 머리를 굴릴 필요는 없으니 실망스럽진 않겠다.

다른 이야기인데 커트 보니것이 어느 졸업식 축사에서 했던 말을 기록해둔 게 생각나서 적어 본다.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라는 책에 있는 글인데,

"우리가 외로운 이유는 친구와 친척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안정적이고 생각이 비슷한 오십 명 이상의 대가족 내에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졸업대표가 이 나라의 결혼제도가 붕괴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더군요. 결혼제도가 무너지는 이유는 가족이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사회 전체일 수는 없습니다. 또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사회 전체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결혼이 박살나는 건 당연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온갖 조직에 가입하기를 권합니다. 그 조직이 아무리 어처구니없더라도 말입니다. 핵심은 여러분의 삶에 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 조직의 구성원들 가운데 상당수 혹은 전부가 멍청이일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이 특히 좋았다. "상당수 혹은 전부가 멍청이일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이건 외려 '너도 멍청이니까 고개 빳빳이 들면서 몸 사리지 마'처럼 들렸다. 나 역시 좀 이상한 부분이 있고 때로 멍청이라고 인정하고 나면 세상에 대해 좀 더 유해지고 웃음도 나온다. 물론 그럼에도 상식을 뛰어넘는 이들이 수두룩하지만, 그것들이 이전처럼 100 그대로 내게 경멸감과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는다. 주변인의 괜찮은 면도 놓치지 않게 되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가까워진다. 아마 루터도 지붕에 거꾸로 매달린 채 약간은 깨닫지 않았을까. 그는 내년 크리스마스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늘 했던 것처럼 트리를 꺼내 장식하고 비싼 선물을 주고 받고 고급 슈퍼마켓에서 아내가 적어준 리스트를 들고 남들과 경쟁하며 장을 볼 것이다. 그렇지만 작년의 크리스마스와도 분명 다르겠지. 

재미있는 책이다. 음,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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