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의 날씨와 사물들. : 사진으로 뽑아낸 하루.



/ 일월 첫날이라고 떠오르며 잔뜩 사랑받았을 해는 또 예쁘게 떨어졌다. 




/ 흥미롭게 읽은 에리크 오르세나의 『두 해 여름』. 거울을 세워둔 방에 빛이 길을 꺾어 머물렀다. 
괌에서 기껏 코나 100% 원두를 사왔는데 유통기한 확인하는 것을 깜박했다. 꺼져가는 생명이었다. 프라이팬에 볶아 보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보리차처럼 구수한 냄새만 남았다. 바보. 




/ 햇빛을 받은 우롱차. 잘 익은 과자 같은 색. 토네이도처럼 요동치는 속마음. 겨울에는 왜 유독 빛을 찾아 엉덩이를 뭉개고 앉을까. 




/ 박혜미의 「동경」. 잠시 고민하다 접었던 한 움큼의 바다가 계속 아른거려서 주문했다. 살까 말까 고민하는 건 역시 배송을 늦출 뿐이라고. 그렇게 도착한 소포가 이유 없이 크고 묵직해서, 대체 뭐가 든 걸까 열었더니 오보이가 짜잔 나타났다. 매번 생각나면 이미 텅 빈 자리만 보이는 매력적인 무가지이다. 마침 정말 좋아할 특집을 끼워 보내준 서점 주인의 손을 부여잡고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싶었다.
바다 그림의 틈에서는 팔랑팔랑 동그란 은박들이 떨어졌다. 빛을 머금은 파도 조각이었다. 이런 작은 센스를 발견할 때마다 지극히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 네 명의 이모들은 왜 모두 바닷가로 갔을까, 의문을 가졌던 나는 벽에 바다를 조금씩 모으기 시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노년의 삶은 바닷가에서 누리겠다고 일기장에 적는 사람이 되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 가서 매일 야자수와 바다를 구경하고 저녁에는 비스코티를 굽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끊임없이 외가의 핏줄에 바닷물이 섞여 있다고 확신하면서.




/ 팔라펠을 좋아한다. 내가 아는 가장 맛있고 위화감이 없는 콩고기이다. 할랄가이즈 나잇.




/ 허리 아프다는 이유로 햇빛 따라 굴러다니며 방바닥에 등을 지지던 날. 난간이 없는 아파트의 창문은 활짝 열리지 않겠지.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아쉬운 마음.




/ 낡은 외장 ODD를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연말의 그 허한 마음을 로켓배송의 힘을 빌려 CD 플레이어를 사서 채웠다. 몇 장 없지만 너무나 좋아해서 사들인, 그러나 제대로 듣지도 못했던 앨범들을 이제는 여유롭게 돌릴 수 있다. 레코드샵에서 표지만 보고 쏙쏙 집어 계산하는 사치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 기쁨을 동네방네 자랑하였더니 새해 첫 선물로 <Call me by your name>의 OST 앨범이 손에 들어왔다. 우리 이 영화 보기로 했잖아. 맞아 그랬는데!
내가 가진 가장 멋진 컴필레이션 앨범이 되었는데, 영화는 언제 개봉하지.




/ 어느 날엔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새벽을 맞았다.




/ 유리창에 서리가 차오를 정도로 추운 날도 있었다.




빨대로 헛손질할 필요 없이 마음껏 퍼 먹을 수 있는 슈크림. 어떻게 안 먹어볼 수 있을까.




도망가지 않는 고양이를 만난 것도, 편의점에 후다닥 다녀와 소세지를 내민 일도 처음이었다.




/ 불필요상점이 가진 두 개의 방 중 하나. 최근에 발견한 경리단길 근처의 빈티지샵이다.




/ 이 바바리아 찻잔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 동안 나를 거쳐간 화이트+블루 조합이 많았기에.




/ 이 날 가게에서 들고 나온 것. 한약을 지은 듯한 포장. 돈을 주고 정신 건강을 샀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 도쿄에 다녀오신 블로거 분이 사색하는 시간들을 선물해 주셨다. 그 첫 번째 시간.




/ 하루는 소풍 가듯이 담아 집을 나서고.




/ 불필요상점에서 골라 온 건 붓꽃이 송이 송이 그려진 일본제 찻잔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것도 화이트+블루의 조합이네. 
역시 도쿄에서 날아온 차를 담고 또 다른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차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북 러버라니. 배 향이 잔잔하게 난다.
타인의 손편지를 읽을 땐 늘 마음이 따뜻해진다.




/ 빛으로 채우기엔 허한 계절. 미세 먼지도 많고 바람도 매섭고.




/ 푸른색 도화지로 덮은 듯한 하늘이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 인형 같은 사람들.




/ 느긋한 발걸음의 고양이를 좇다가 길고양이 급식소를 발견했다. 너의 여유엔 이유가 있구나.




/ 상수역 1번 출구쪽 구역에서 길을 헤매는 답답이는 이곳을 상뮤다 삼각지대라 부르고 있다. 오믈렛이 메인인 브런치 플레이트를 먹은 날이었다. 몽글몽글 부드러워 좋았다. 열정이 느껴지던 조용한 가게였다.




/ 그림책에 등장할 것 같은 케이크를 보았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서 보기만 했다.




/ 백만 년 만에 가챠샵에 들어갔다. 가챠에 크게 흥미는 없는데 가보자 해서 끌려 들어가서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것들을 뽑고 어떡해 귀여워만 열 손가락 넘게 반복했다. 전자레인지는 문이 열리며 옆구리에 톱니가 달려 돌릴 수도 있다고 여기에도 자랑.




/ 코코팜을 볼 때마다 봉봉과 쌕쌕은 잘 있는지 물어본다.




/ 대구 사람들이 부러운 이유 하나는 이 작가님에게 있다. 아마도 대구에서 활동하시고 대구의 독립책방에 작품을 가장 먼저 들이시는 기탁(@toclamp)이라는 분. 나는 뒤늦게 유어마인드에서 첫 번째 LP 포스터를 구했고, 이달엔 별책부록을 통해서 두 번째 LP 포스터를 들였다. 이 그림은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들으며 그리셨다고 한다. 이분의 그림이 종종 취향이라서 LP 시리즈가 몇 년이고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 본다. '세점들'의 앨범 커버 중 하나인 케이블카 그림을 이 사이즈로 보고 싶은 혼자만의 소망도 있다.
이번에는 비닐 커버를 벗겨내지 않고 붙였다. 너무 좋아서 상할까봐 뜯지 못하고 꽂아 둔 앨범처럼.




/ 이글루스와 티스토리에서 활동하시는 까만자전거 님의 신년 기념 이벤트에 참가했다. 판매하시는 중고 음반 중 두 장을 골라 받을 수 있는 이벤트였는데 나는 재즈 카테고리에서 쏙쏙 골랐고 다행히 선점자가 없어서 두 장 모두 받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커버가 아름다우면 음악도 좋다는 근거 없지만 믿고 싶은 명언에 기대어 표지 위주로 고른 건데 이번에도 선방했다. 늦은 저녁 적막한 시간을 멍크의 <UNDERGROUND>로 채우는데 얼마나 훈훈했는지.




/ 모으던 커피잔들을 다른 주인 찾아서 되팔고, 나에게는 사용감이 있어 팔리지 않은 소수의 잔만 남았는데 그게 더 기뻤던 날이 있었다. 이제 수집이 재미없어졌다 해도 조금은 남아있던 아쉬움이었을 수도 있고, 뭔가 재테크처럼 굴러가는 한국 빈티지 시장에서 도태된 이 잔들이야말로 온전히 내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또 자잘한 스크래치들에서 세월의 중후함도 느껴지고 하는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세이타 아크티카도 그런 잔 중 하나였는데, 얼마 전 무심하게 아라비아핀란드를 검색하다 같은 라인의 시리얼볼을 보았다. 림 부분에 생활 스크래치가 많고 삼발이 자국처럼 옆면에도 보관 스크래치가 남아서 아무도 사가지 않는 그릇이었다. 밑받침으로 쓰라는 듯 소서를 끼워 팔았는데, 이미 갖고 있는 소서이니 굳이 얹어주지 않아도 냉큼 구입했을 터였다. 아, 되팔지 못할 내 것을 또 발견했구나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커피잔과 세트로 쓸 수도 있고! 후다닥 결제하고 기다려 물건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심하지 않고 깔끔해서 기분이 좋았다. 민트급을 강조하는 나라라서 도태된 듯하지만, 아마 오프라인 벼룩시장에서 이 볼을 봤더라면 오늘치 행복을 다 충전했다며 손에 들고 뛰어다녔을 정도. 내 돈 주고 구입했지만 이 돈을 주기 미안할 정도로 저렴하게 사서, 두고 두고 잘 쓰겠다고 상품평을 남겼다. 
분명 시리얼을 먹으려고, 저녁에는 샐러드를 담아 먹겠다고 샀는데 개시를 차슈덮밥으로 해버린 일은 허허 웃고 넘겨야지.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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